만남은 멈추지 않는다-김형국
여자친구와 저는 교회를 다니는 크리스천 커플입니다.저는 여자친구를 만나기 전에는 교회를 잘 나가긴 했지만 이사를 하고나서부턴 교회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자친구를 만나고나선 교회에도 잘 정착했고,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좋은목사님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안에서 신앙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신앙은 예전처럼 뜨겁지가 않았습니다. 여자친구는 저한테 매일큐티하자고 했지만 저는 이런핑계, 저런핑계만 댔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이해도 잘되지않았고 잠만 왔습니다. 한날은제가 큐티를 미루는 모습에 여자친구가 진지하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오빠는 주님을 영접했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사람인데 행동이 왜이래?
그 이후로 저는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변화하고 싶고 성장하고 싶지만 30년동안 변화지 못했습니다. 느꼈습니다. 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걸, 그래서 나는 나를 바꾸기 어렵다는거을
내가 가진상황을 변화할 수 있는것은 주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로 교회를 갈때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싶다는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금요일 심야예배때 기도를 하는데 뜨거운 눈물이 났습니다. 나의 욕심때문에 주님을 멀리했구나는 생각이 들었고 주님을 만나고 싶다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의 여자친구인 민경이를 통해서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만들어 주신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나의 고등학교친구인 재원이를 통해서 만남은 멈추지 않는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신앙고민을 친구한테 털어났습니다. 만남은 멈추지 않는다. 책을 추천해줬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냥 책을 안샀습니다. 다시 친구가 전화와서 책을 사냐고 물어봤습니다. 아직 안샀다고 헀습니다. 친구는 당장구매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책을 구매하게 되었고 읽게되었습니다.
들어가며
고양이 한마리를 집에 들어와도 삶이 변합니다.
고,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수많은 인생을 바꿔어 놓았다는 예수가 마음 속에 들어 왔는데도 왜 아무런 변화가 없을까요?
1.관심을 가졌지만
"물론 삶의 변화를 꿈꿉니다. 그런데 어떤 책을 읽어도 그 누구를 만나도 변하지 않아요."
1. '교회만'만 다니는 사람
교회에 출석 하지만 이것이 별 의미는 없습니다. 집에 와서 밥 먹고 잠자고 다시 일하러 가는 사람처럼 교회와서도 위로받고 잠시 쉬었다 갑니다. 예수가 누구이고 그분이 이 세상을 향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시며, 나 자신을 향해서는 어떤 뜻을 갖고 계시는지 잘모릅니다. 교회를 다녀도 다니기'만'하니까 변화는커녕 잠만 찾아옵니다.
2.예수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별로 큰변화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하고 신앙고백도 합니다. 성경 지식도 꽤 있어서 기독교가 뭔지 물어보면 곧 잘 대답합니다. 하지만 인격이나 삶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예수 모르는 사람과 별반 다른게 없습니다. 3년전, 5년 전 내모습과 지금 내 모습에 별 차이가 벗으니 "나느 왜 늘 똑같지?"라는 질문을 합니다.
3.예수를 믿어서 변하는 사람
'예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됐을까?' 구원의 감격을 잊지 않습니다. 자다가 불현듯 깼는데,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 하나님을 안다는 사실이 너무나 다행스러워서"휴"..
열등감에 빠져서 늘 타인과 자신을 비교 했던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늘 혼자여서 마음 나눌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아< 더불어 살 수 있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지루하고 졸렸던 예배가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고 예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시작하는 것. 하나님과 단둘이 앉아 있는 기도의 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어떤때는 만사를 제쳐드고 반나절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든지 조용한 골방을 찾습니다.
예배와 기도의 참 소중함을 알아 가면서 변화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겠다고 결단
예수에 대한 관심만으로는 사람이 변하지 않으며, 반드시 필요한것은 '진실한성찰'
성찰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는 것
성찰이 어려운 이유는 거울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이 자주사용하는 것울은 다른 사람입니다, 남에 비추어 자신을 평가합니다. 자기보다 훌륭하고 나은 사람과 비교하는 삶이 몸에 밴 사람은 늘 열등의식에 빠집니다. 반대로 자기보다 못난사람이나 부족한 사람과 비교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은근한 우월의식에 젖어 삽니다. 왜곡된 성찰이 넘쳐날수록 진정한 성찰은 어려워집니다. 뭔가에 비추어 나를 성찰해야 하는데, 그리스도인조차 주변에서 자신을 제대로 비춰 볼 거울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를 만나 변하고 싶다면 나를 먼저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모른다 해도 양심에 자신을 비추어 보았던 사람은 자신의 한계와 더 나아가 죄인됨을 발견하고, 결국 그리스도인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를 만난 다음에도 일상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훈련을 합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특징
자신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을 획득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본 만큼 사람은 변화를 경험합니다. 어쩌면 자신을 성찰하는 것은 신앙을 갖는 것 이전에 필수적으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사람만이 변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깨끗한 거울에 비춰 보면 비춰 볼수록 절망감은 커집니다. 흐린거울에 비출 떄와 달리 더 큰 절망이 찾아옵니다.
예수는 단지 우리를 위로하고 반창고 붙여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 예수를 만나서 평생 성숙해 나가는 여정
예수를 주일에 잠깐 옷김을 슬쩍 보이고 사라지는 분이 아니다.
예수에 대한 관심만으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자기 성찰을 통해서만 우리는 변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기성찰은 예수가 누구이신지 인격적으로 알아 가며 그 예수를 통해 자신을 알아 가는 것입니다.
2.영접 했지만
누가복움 7장 36~50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처하여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하였다. 그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 들어가셔서, 상에 앚으셨다. 죄인인 한여자가 있었는데,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잡숫고 계신 것을 알고서, 향유가 담딘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등 뒤에 발 곁에 서더니 울면서,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발랐다. 바리새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혼자 중얼거렸다."이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저 여자가 누구이며, 어떠한 여자인지 알았을터인데! 그여자는 죄인인데! 예수꼐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아, 네게 할 말이 있다." 예수꼐서 말씀하셨다."어떤 돈놀이꾼에게 빚진 사람 둘이 잇었는데, 한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또 한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이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돈놀이꾼은 들에게 빚을 없애 주었다. 그러면 그 두사람 가운데서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였다. "더 많이 빚을 없애 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네 판단이 옳다."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여자를 보고 있는 거지?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에,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았다. 너는 내게 입을 맞추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들어와서 부터 줄곧 내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느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내발에 향유를 발랐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말한다. 이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것은 그가 많이 사랑하였기 떄문이다. 용서받는 것이 적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 죄가 용서받았다." 그러자 상에 함께 앉아 있던사람들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하여 준다는 말인가?"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주변 상황이 심각한데 굳이 시몬이 예수를 집에 초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꼐 발 싯을 물도 주지 않고, 입을 맞추지도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풍습 먼지가 많은 지역이라 귀빈이 집에 들어 오면 발 씻을 물을 내오고, 환대하는 의미로 뺨을 대고 입을 맞추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시몬이 예수를 어느 정도로 여겼는지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선지자일지 몰라서 초대는 했지만, 미심쩍은 태도를 유지합니다.
다른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이렇게 생각합니다.'저 사라은 죄인 맞아.
시몬은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지도층에 속하는 바리새파 사람, 깨끗했고 종교적으로도 모두의 모범, 경제적으로도 중상층 이상
시몬을 닮은 현대교인
시몬과 현대 그리스도인은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예수를 압니다. 예수를 존경하고, 자기 삶으로 초대합니다. 예수를 믿습니다.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며, 교회의 여러조직에 속해 신앙생활도 합니다. 시몬처럼 다른 이들의 차가운 시선을 물리치고 예수를 초대합니다. 예수를 중요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리새파 사람이 "그 여자, 죄인인데!" 다른 사람이 나를 죄인이라고 해도 자동으로 '내가 죄인이지.'라고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여인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여인의 특징은 자신을 정말 죄인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같은 죄인이나 별 볼일 없는 이들과 기꺼이 함꼐 먹고 마시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분인 줄도 알았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정말 별 볼일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절감하느것. 한 인간이 자신의 힘이 아니라 그분의 힘으로 산다고 인정하고 꺠달았는지 보면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여기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하나님 없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음에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자기 인생의 어떤 부분도 제대로 제어하거나 변화시킬 힘이 없습니다. 인간은 그것으르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며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내가 노력해서 이룬것들조차 사실은 주님께서 허락하신것들 입니다.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면 부족하고 더러운 것들로 가득합니다. 자기합리화, 변명, 탐욕, 시기, 질투, 미움, 증오, 열등감, 우월감,..
내게 생명을 주시고 매일 살아가도록 은혜를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을 무시하는 것이 바로 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는 장신구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괜찮은 삶을 조금 더 낫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와 비교해 보니 나는 그래도 괜찮네.' 하는 정도의 자의식에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주인공은 향유르 부은 여인이 아닙니다. 놀랍게도 시몬입니다. 시몬은 세리나 죄인에 비해 자신이 더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도 동일한 죄인이다. 자신을 건강 의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알고보면 너도 병든 죄인이다. 네 죄도 용서 받아야 한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해 스스로를 의롭다 착각하는 네가 오흐려 5천 데나리온, 5만 데나리온 빚진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 죄는 저 여인보다 낫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해 가며 스스로를 의인이라 여겼던 생각이 얼마나 큰 착각이며 심각한 문제인 줄 깨닫고, '죄가 용서 되었다."고 선언하는 이 젊은이가 누구인지를 탐구해 나갔다면, 진정한 변화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주님은 여인을 마나러 시몬의 집에 간 것이 아니라, 시몬을 만나기 위해 시몬의 집에 가셨습니다. 주말에 잠깐 신앙 생활하는 게 아니라, 매일 매 순간 하나님 없이 살 수 잇겠냐' 예수는 단지 시몬의 집에 들어가고 싶으셨던 것이 아니라, 시몬의 마음에 들어가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를 삶의 한 부분에 영접한다고 해서 인생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를 삶과 마음의 중심에 초청하는 것이 예수를 진정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3.열심히 믿었지만
누가복음 8장 43~48절
무리 가운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있었는데 [의사에 게 재산을 모두 다 탕징했지만]아무도 이 여자를 고쳐 주지 못하였다. 이 여자가 뒤에서 다가와서는 예수의 옷술에 손을 대니, 곧 출혈이 그쳤다. 예수께서 물으셨다."내게 손을 댄 사람이 누구냐?" 사람들이 모두 부인하는데, 베드로가 말하였다."선생님, 무리가 선생님을 에워싸서 밀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누군가가 내게 손을 댔다. 나는 내게서 능력이 빠져 나간 것을 알고 있다." 그 여자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음을 알고서, 떨면서 나아와 예수께 엎드려서, 그에게 손을 댄 이유와 또 곧 낫게 된 경위를 모든 백성 앞에 알렸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엿다. 편안히 가거라."
이들 모두는 간절한 소망 하나씩 품고 찾아왔습니다. 피가 멈추지 않는 병인 혈루증을 12년간 앓고 있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달거리를 해야하는여성에게 피가 멈추지 않는 병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한 세상을 심판하고 회복하기 위해 예수께서 오셨고,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믿음? 내가 믿고 싶은 것을 간절히 믿는것이 아닙니다. 설경이 말하는 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이사람에게 손을 대면 낫겠구나.'라는 강력한 믿음이었을까요?아닙니다! 이 여인은 '예수가 메시아일지 몰라! 그가 메시아라면 세상을 회복시키는 분이기 떄문에 내 문제도 해결해줄지 몰라.'라는 작고 가녀린 믿음으로 예수께 손을 댄 것입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얼마나 건절하고 강하게 믿는냐가 아니라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믿은은
1.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믿음, 하나님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우주를 다스리고 계시며 우주를 이끌어 가시는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
하나님을 만났는데도 변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끊임 없이 하나님을 알아 가야 합니다. 우리의 선입견과 오해는 성경 읽기와 묵상을 통해 교정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깨진 세상, 불의가 판치는 세상을 심판하고 회복하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심판하고 회복하기 위해 예수를 메시아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는 단지 천국 입장권을 주기 애해 오신분이 아닙니다.
기도 할 때는 하나님이 내 코끝 앞에서 듣고 계시다고 믿어야 합니다.
영화를 보러 가듯이 예배도 보러 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설교를 들을때 믿음으로 하나님이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고통은 내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 고통은 통해 하나님이 나를 단련시킵니다.
하나님을 만났어도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날마다 순간순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고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것을 간정히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 하시고 계신 일, 그리고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반응하기 시작할때 우리의 변화도 시작됩니다.
4.성경을 많이 배웠지만
누가볶음 11장 37~44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바리새파 사람 하나가 자기 집에서 잡수시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들어가서 앉으셨다. 그런데 그 바리새파 사람은, 예수가 잡수시기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신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다 그러나 주님꼐서는 그에게 말씀 하셨다."지금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 어리석은 사람들아, 겉은 만드신분이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그 속에 있는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해질 것이다.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이다!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정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소홀히 한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행해야 하지만, 이런 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야 하였다.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탕터에 인사 받기를 좋아한다!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드러나지 않게 만든 무덤과 같아서,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그것이 무덤인지를 알지 못하다!"
예수가 비리새파 사람의 집에 들어갔을 때 손을 씼지 않앗습니다. 이 정통은 당시 유대인에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율법과 전통에 밝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를 이상하게 바라봅니다. 그때 예수가 "너희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합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문제는 성경을 열심히 읽고 연구하면서, 보이는 외면만 아름답고 건강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도 속일 수 있는 내면의 탐욕과 악독은 그대로 둔 것입니다.
'바리새파형' 이난은 내면성찰이 필요합니다.내면을 성찰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해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끊임없이 이 훈련을 합니다.
내가 이 부분에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하나님꼐 구할 수 있습니다. 수용 회개 ,성장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내면을 돌아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정의와 사람의 관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율법교사들은 그렇게 성경을 열심히 공부했지만 예수 메시아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을 무시하고 핍박했습니다. 지식의 열쇠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교사들은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쓰는지 몰랐고, 자신만이 아나라 다른 사람도 못 들어가게 막았습니다. 열쇠의 핵심은 예수가 미시아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를 눈앞에 두고도 누군지 몰랐습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 메시아를 인생의 중심에 놓고 삶을 재조정하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틀어진 삶을 재조정합니다.
매일 조정하는 자섹 필요합니다.
친구나 가족에게 무엇을 바꾸려 하는지 알리고 기도를 부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설교 듣고 예배드릴 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 했다가 집에 가서 잊어버립니다. 그러고는 다음주일 교회 가서는 다시 맞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5.은혜를 입었지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은혜를 경헙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거나, 설교가 꼭 나를 향한 말씀 같아 전율하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내 상황과 꼭 맞는 성경구절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17장17~19
예수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 가시게 되었다.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 환자 열 사람을 만나셨다. 그들은 멀찍이 멈추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예수꼐서는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의 몸을 보여라."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되돌아와서,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꺠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 사람 한 명밖에 없느냐? 그런 다음에 그에게 말씀하셨다."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정상인을 마주치면 멀리서부터"나는 나병 환자입니다."라고 표시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돌에 맞기 일쑤였습니다. 상대방이 피하도록 매사에 신경 쓰며 살았으니,이들 마음속에 부정적 자아상이 자리를 잡았을 것이고, '왜 나만?'이라는 피해의식도 컸을 것입니다.
나병 환자들은 반신반의했겠지요. 나병이 낫지도 않았는데 일단 가라니까 가봅니다. 속는 셈치고 길을 떠났을지 모릅니다. 정말 눈곱만한 믿음, 겨자씨만한 믿음. 제사장에게 가는 동안에 병이 기적처럼 낫습니다. 믿음으로 행동
구원은 천국 가는것만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변화되고 회복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리기 시작하는것입니다,
한 명만이 예수께 되돌아와서 발 앞에 엎으려 감사를 표합니다.
예수는 세상 사람을 심판하러 오셔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배반한 이들을 위해 대신 심판을 받고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여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격이 ㅇ벗는 우리를 완전히 받아 주셨고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새롭게 알았을때, 자신에 대해 좀 더 깊이 성찰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부족함을 격려해주시는 주님을 경험할때,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바라잡아 주시는 손길을 경험할 때, 우리는 이런 은혜를 주시는 주님께 감사해야합니다. 은혜를 당연히 여기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점점 둔감해지고, 결국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지 않습니다.
나병 환자 한 명 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감사하며 돌아왔습니다. 아홉 명은 감사하는 마음은 있었겠지만 표현하지 않고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네 믿음이 너를 권하였다."는 놀라운 선언도 놓치고, 이를 기점으로 시작되는 성장과 성숙의 여정도 놓쳐버렸습니다. 이 모습이 은혜를 경험했지만 변하지 ㅇ낳는 많은 그리스도인으 모습은 아닐까요?
하나님이 하고 계시는 일을 알아채고, 알아챈 것을 하나님께 감사로 표현하는 것이 우리가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하나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맞져 주시는 것입니다.
예배는 내가 살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성정하는 그리스도인은 매일 순간순간 멈추어서 개인적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6.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누가볶음 18장 18~27
어떤 지도자가 예수께 물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꼐서 그에게 말씀하셨다."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너는 계명을 알고 있을 것이다. '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하지 않았느냐? 그가 말하였다. "나는 이런 모든 것은 어려서 부터 다 지켰습니다." 예수꼐서 이 말을 들이스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게느 ㄴ아직도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이 말씀을 듣고서, 그는 몹시 근심하엿다. 그가 큰 부자이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는 그가 [근심에 사로잡힌 것을]보시고 말씀하셨다. "재물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어들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람은 할 수 없는 일이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오늘날에도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닌분들은 대게 착합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이웃에게 거짓 증언하지 않고 삽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삶이 선하다고 생각한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세상 사람들과 비교하면 일반적으로 선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아침마다 성경을 읽어야 할까요?
말씀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기 떄문입니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우리가 진정으로 섬기는 신이 누구인지가 분명해집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의 숨은 우상이 튀어나옵니다.
7.십자가의 예수를 만났지만
십자가에 함꼐 매달린 두 명의 강도였습니다. 마자막으로 만난 사람이 바로 이 두 사람입니다. 두 죄수 역시 살아서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예수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32~43절
다른 죄수 두 사람도 예수와 함꼐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그들은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서,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달고, 그 죄수들도그렇게 하였는데,한 사람은 그의 오른쪽에, 한 사람은 그의 오른쪽에 한사람은 그의 왼쪽에 달았다. [그때에 예수꼐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아서,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백성은 서서 바라보고 있엇고, 지도자들은 비웃으며 말하였다. "이 자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저말 그가 택하심을 받은 분이라면, 자기나 구원하라지." 병정들도 예수를 조롱하였는데, 그들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신 포도주를 들이대면서, 말하였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다" 이렇게 쓴 죄패가 붙어있었다. 예수와 함께 달려 있는 죄수 가운데 하나도 그를 모독하며 말하였다.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그러나 다른 하는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똑같은 처형을 받고 있는 주제에,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으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 그러고 나서 그는 예수께 말하였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꼐 낙원에 있을것이다."
심자가에 달린 두 죄수에게는 세 가지 공통점
첫번째는 자기가 지은 죄로 심판을 받고 있다는 것
두번째는 예수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다는 것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면서 드렸던 기도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마지막 공통점은 예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경정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
두사람의 세가지 공통점은 오늘날 우리와도 무척 닮았스비다. 우리는 자신이 저지른 죄와 함께 살아갑니다. 우리 인생은 내가 결정헀던 것들의 결과를 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억과 그 결정의 결과를 지워버릴 수는 없습니다.
타인의 선택과 그들의 죄까지도 내게 영향을 미칩니다.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인간은 십자가형에 처해진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살기 때문에 겪는 혼란과 고통과 아픔을 안고 삽니다. 결국 그 끝에는 예수가 다시 오실 때까지 유예되었던 마지막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도 중 한사람은 자신을 성찰했습니다. 예수를 바라본 게 아니라, 그앞에서 자신을 바라봤습니다. 그제야 자신이 죄인인 줄 깨달았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심판 받는것이 마땅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습니다.
신앙샹활 중에 경험하는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일까요? 가장 큰복은, '그분이 나와 함께하시는 구나. 나를 떠나지 않으시는구나. 하는 사실입니다
임마누엘 뜻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과 함께 계신다."
믿음은 주님과 '오늘'함께하는 겁니다.
예수를 알아 가면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 자신을 성찰합니다. 자기 성찰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삶이 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수를 만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누구신지 알아 가야합니다.
예수를 알아 가는것과 함께, 자신을 성찰하는 일도 꼭 필요합니다. 맑은 거울이 되시는 예수를 통해 자신을 진실하게 직면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믿음이 자기 세뇌와 합리화의 도구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예수를 알아 가는 것과 자기 성찰, 그리고 또 한가지가 빼놓은ㄹ 수없는 것은 바로 용기 있는 결단과 새로운 습관입니다.
알아 가는 만큼 결단하고 새로운 습관으로 살아갈 때 변화는 가속화됩니다.